“ 2010.04.26 무비위크: 오동진의 뷰파인더 ”

[오동진의 뷰파인더] Shame on You!


지난해 제작된 초저예산 장편 영화 다섯 편이 있다. 배창호 감독의 <여행>, 윤태용 감독의 <서울>, 김성호 감독의 <그녀에게>, 문승욱 감독의 <시티 오브 크레인> 그리고 전계수 감독의 <뭘 또 그렇게까지>는 ‘힘들게’ 만들어져서 ‘힘들게’ 개봉되고 있는 작품들이다. 사람들이 자꾸 오해하니까 이 기회에 확실히 말해두겠는데, 이 영화들은 단편이 아니라는 것, 무엇보다 결코 옴니버스가 아니라는 것이다.

편당 총제작비는, 순제작비가 아니라, 평균 1억 5,000만 원 안팎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창호 같은 작가주의 감독을 포함해 뛰어난 감독들이 대거 참여했으며, 혹자의 평가에 따르면 2009년에 나온 영화들 가운데 가장 얼터너티브한 제작 방식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들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렇다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배급과 상영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문제는 현실이 너무 엄혹하다는 것에 있다. 배급은 철저한 돈의 논리에 따르는 것이며, 이른바 P&A(Print&Advertizing) 비용이 확보되지 않으면 영화가 창고에서 몇 년간 썩을 우려가 생긴다. 실제로 그런 영화들이 주변에 적지 않다. 앞의 영화 다섯 편은 결국 영화사 스폰지에서 배급을 맡고, 아쉽지만 스폰지 소유의 극장에서 힘겹게 단관 개봉되는 길을 택했다.

5월에는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릴레이 상영될 것이며, 바라건대 비록 한 개관이나 두어 개관이라 하더라도 이렇게 비상업영화관을 돌아다니며 장기적으로 순회 상영됐으면 좋겠다. 아마도 그것만이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알바’ 수준도 못되는 돈을 받고 살인적인 여름 더위에 현장에서 뛰었던 스태프들을 위하는 길일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이들 영화의 대부분이 국내에서 열리는 국제 영화제 혹은 해외 영화제에 출품돼 관객들을 만난다는 것이다.

<뭘 또 그렇게까지>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한국 영화의 오늘-비전’ 부문에서 상영됐다. <여행>은 올해 초 열린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 이어 곧 있을 전주국제영화제 쇼케이스로 상영된다. <그녀에게>는 아예 같은 영화제의 경쟁부문으로 들어가 있다. <시티 오브 크레인>은 체코 프라하국제영화제로 이미 물 바깥으로 나갔다. 작은 영화일수록 대중과의 접점을 마련하기가 힘들고, 그래서 어쩌면 다수의 관객들에게 영화를 보여주는 효과적인 길은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것이다.

비상업 영화들이 영화제 출품을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돈의 규모가) 작은 영화들은 영화제가 늘 고마운 것이다. 상업 영화와 비상업 영화의 배급 구조가 거의 9 대 1인 우리나라에서는 더더욱 영화제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부산이나 전주, 부천, 제천 등이 아니면 결코 만날 수 없는 영화들이 매년 수백 편이다. 관객들은 멀티플렉스에서 만나는 할리우드 영화나 할리우드형 영화들과 달리 영화제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는 작품들을 만나게 된다.

평생 가야 몇 편 보기 어려운 동유럽권의 영화들, 남미와 중동, 아프리카 지역의 영화들을 만나기도 한다. 어쩌면 인생의 방향을 바꾸게 되는 영화를 만나게 되거나 세상을 완전히 다른 각도로 해석하게 되는, 그래서 세계관이 전도되는 영화를 만나기도 한다. 그게 바로 영화제다. 이른바 전복(顚覆)의 영화들의 집합소이며,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영화들이 나오는 곳이다.

정부가 부산국제영화제 등 여섯 개 영화제에 대한 국고 지원금을 적게는 5,000만 원에서 많게는 3억 원까지 삭감했다고 한다.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글귀는 이제 저기 어디 공룡시대의 화석에 새겨진 글처럼 느껴진다. 여기저기서 ‘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냐’는 말들이 떠돈다. 궁극적으로는 작은 영화들의 희망을 꺾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는 왜 만날 그럴까. 왜 좀 문화적으로 풍요로운 사고를 가지지 못하는 것일까. 그러면서도 왜 주요 영화제 개막 때는 그렇게 앞 다퉈 앞줄에 앉으려고들 하는 것일까. 마이클 무어가 어느 영화제에선가 부시에게 했던 말이 떠오른다. Shame on You(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우리 모두 같이! Shame on You!

About this ent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