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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9.17 상상마당 매거진: '황금시대' 김성호 감독 ”

'황금시대’ 김성호 감독 “영화감독으로서의 삶은 계속 된다”

“도레미파솔라시도...” 단순한 가사와 함께 가슴을 파고드는 멜로디. 조원선은 자신의 첫 솔로 앨범에 수록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병원에 다녀온 그녀지만 노래에 빠져든 순간만큼은 그런 피곤한 기색을 느낄 수 없었다. 노래 한 곡이 끝나자 모두 흥겹게 그녀에게 환호성을 보냈다.
 
3월 8일 밤, 홍대의 물고기 카페. 보컬 조원선에 <삐삐밴드>의 박현준, <문샤이너스>의 손경호가 연주에 참여했지만 그 순간은 단순한 콘서트가 아니었다. 바로 영화 <페니 러버>의 촬영현장이었다. 현장에 취재를 가기 전, “그녀는 하룻밤 잠자리를 같이 한 어린 소년으로부터 십 원짜리 동전을 받는다”는 내용의 시놉시스를 전주국제영화제 홍보팀으로부터 받았다. 한 여가수가 잠깐 한 소년과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소년은 다른 여자 친구가 생긴다. 그런데 그녀는 흘러가듯 만난 그 소년을 잊지 못한다. 그 사랑은 십 원짜리 동전처럼 그녀의 지갑 안에 쏙 들어와 있다. 동전을 버리려 하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다. 편의점에서 10원짜리 동전을 놓고 실랑이를 버리는 모습이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했다. <거울 속으로>, <해피 버스데이>의 김성호 감독이 찍는 단편이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영화 ‘Penny Lover’, 감독 김성호, 주연 조원선, 유형근, 박현준, 이준오


그 후로 6개월이 지나 상상마당에서 김성호 감독을 만났다(상상마당에서 <판타스틱 자살소동>이 상영된 것을 생각하면 그는 이곳과의 인연이 깊어지고 있다). 새로운 프로젝트로 부산에서 촬영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여전히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의 영화는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스토리를 실험해 나간다. 김성호 감독의 표현대로라면 그의 영화에 원천이 되는 것은 ‘생활 판타지’다. 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그 사이에서 신중하게 세상을 견지한다. 영화를 시작하던 순간부터 최근 프로젝트까지 김성호 감독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영화감독의 시간은 다르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아니, 세상을 포착하기 위해 다르게 흘러야만 한다.

우리는 늘 뭔가 당장 해내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그 실체도 모르면서 분주하게 쫓긴다. 그런 생활 패턴에서 한 발 벗어날 수 있다면 김성호의 영화가 더욱 친근하게 다가올 것이다. 그의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주는 것은 일상에서 약간 벗어난 느림이다. 어느 때는 회상이 되고, 어느 때는 환상이 된다. 영화 현장에 서면 시간과의 싸움을 피할 수 없는 직업이지만, 김성호는 영화감독으로서 삶과 자신만의 속도를 즐기고 있다. 조금은 천천히 걸어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지치지 않을 게 분명하다. <거울 속으로>이후 6년이 흘렀다. 그리고 앞으로 6년 후, 그가 어디에 도착할지 궁금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Q: <거울 속으로>가 할리우드에서 <미러>로 리메이크되었다. 작년 9월에 개봉을 했었는데, 어떻게 봤나?

일단 재미있게 봤다. <거울 속으로>는 내 장편 데뷔작이었기에 기대하는 바가 있었다. 뉴욕에 유학 갔다 와서 바로 시작했던 영화라서 작품을 끝내고 나서는 아쉬운 게 많았다. 이걸 미국에서 리메이크한다고 할 적에, 내가 원래 원했던 정도까지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물론 기대한 만큼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알렉산더 아자 감독(<힐즈 아이즈>)이 하드고어를 찍는 사람이기 때문에 원래 영화 컨셉트하고는 다른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생각은 했었다. 그런 부분은 안 맞았다.

<거울 속으로>가 갖고 있는 철학적인 부분을 좀 더 깊이 있게 드러내기를 희망했지만, 오히려 그 부분은 피해간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그런 건 아쉽다. 하지만 영화 모양새나 비주얼적인 부분은 할리우드적인 요소가 살아있어서 재미있었다.


Q: <거울 속으로>와는 달리 <미러>는 깜짝 놀랄 정도로 잔인했다.

영화 보면서 “나도 이렇게 잔인하게 할 걸 그랬나?”하는 생각도 들었다.(웃음)


Q: <주온>을 할리우드에서 <그루지>로 리메이크하는 데는 프로듀서 이치세 다카시게의 힘이 컸다. 원작을 만든 일본 제작자와 감독이 함께 할리우드 진출하는 반면에 국내 영화는 시나리오만 판매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 일본 영화들의 힘도 있지만, 미국에서 그쪽과의 커넥션이 있다는 게 중요하다. 반면 한국은 마켓에 와서 영화보고 가져가는 거니까. 그 이후의 상황은 전혀 모른다. 연락이나 피드백을 받지 못한다. 영화가 나와야 만든 걸 아는 상황이니까, 그러다보니 리메이크하면서 원작의 정서적인 부분을 놓치고 가는 게 많다.

Q: 3편의 중편을 모은 옴니버스 영화 <판타스틱 자살 소동>에서 <해피 버스데이>도 인상적이었다. 임춘봉이란 캐릭터가 특이했다.

게이 커뮤니티에서 살아가는 카페 주인 임춘봉의 이야기다. 이 영화를 구상한 것은 10년 전이다. 그런 늙은 게이를 본 적이 있다. 뉴욕에 있을 때 식당에서 일을 했는데, 거기에 항상 점심마다 밥을 먹으러 오는 게이 커플이 있었다. 그 분들을 보면서 이야기를 만들어보자고 준비해서 <해피 버스데이>의 시초격인 이야기가 하나 나왔다. 그걸 오랫동안 갖고 있다가 <판타스틱 자살 소동>을 하면서 이야기를 좀 바꾸어서 만들게 된 거다. 미국이란 무대를 한국적인 상황으로 이야기를 바꾸면서, 한국에서 노인 게이 커플이 얼마나 존재하는가 알기 위해서 리서치를 했었다.

 ▲ 영화 ‘황금시대-패니러버’의 김성호 감독


Q: 그런 커플이 실제로 한국에 많이 있나?

의외로 굉장히 많다. ‘친구 사이’가 협조를 해주셔서 소개를 받았다. 종로 쪽에 나이 드신 게이 커플이 있다. 취재를 했었는데, 종로에 50, 60대 게이 커플들이 잘 가는 술집이나 다방 같은 곳이 100곳이 넘는다.


Q: 와, 몰랐는데 진짜 많다.

실제로 가면 분위기가 다르다. <메종 드 히미코>를 보면 여성화되거나 트랜스젠더 같은 분위기지만, 이곳의 게이들은 남성적인 느낌이 강하다. 술을 좀 마시거나 상대가 좀 편해지면 여성성이 나오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양복입고 넥타이를 한 분들이 많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 컨셉트를 잡을까 고민하다가 리서치한 결과를 토대로 한국적으로 만들어 본 거다.
 

Q: 여성스런 게이를 모델로 했다가 강도를 줄인 건가?

한국에서는 그런 모델이 트랜스젠더를 빼놓고는 없다. 어느 정도 모양새를 숨기기 때문에, 내가 미국에서 봤던 인물의 컨셉트를 접고 이미지를 죽였다. 그렇다고 너무 한국적으로만 가면 재미가 없기 때문에 그걸 믹스했다고 보면 된다.
 

Q: 전에 김조광수 대표님과 인터뷰하면서, 게이들이 가라오케나 노래방에서 노래 부르는 걸 굉장히 좋아한다고 들었다.

주로 가라오케다. 술 마시다가 끌고 나와서 춤추고. 다들 정말 좋아하시는 것 같다. 그 분들은 “일반, 이반이다”라고 하면서 다른 일반 사람들이 오는 것에 대해 폐쇄적이다. 여자도 못 들어온다.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혼자서 술 마시던 분들이 나와서 노래도 하고 춤을 춘다. 그때 확 바꾸면서 본연의 모습이 드러난다. 그런 것들이 재미있었다.


Q: 엔딩에서 생일 파티에 나오던 음악 연주가 재미있었다. 거기서 나오는 노인들은 어떻게 캐스팅했나?

그분들은 노인 밴드다. 주로 노인정을 다니면서 연주를 하신다. 처음에 시나리오를 썼을 때 연주를 하는 노인들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해서 섭외를 했다. 수소문을 했던 건데, 그분들이 방송에도 출연한 적이 있었다. 좀 금액도 드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영화 찍을 때는 워낙 술을 많이 마시고 오셔서 굉장히 힘들게 촬영했다. 음악 감독이 만들어서 드린 음악을 하루 연습하고 녹음했다.



Q: <거울 속으로>, <해피 버스데이>, 그리고 이번 <황금시대>의 <페니 러버>까지. 다양한 스타일이라서 김성호 감독의 색깔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었다.

장르라든가 이야기의 특성을 잡아내는 데 있어서, 남다른 부분들이 있는 것 같다. 나 장르를 고집하거나 한 스타일을 잡고 가진 않는다. <거울 속으로>를 시작할 때도 공포 영화를 좋아하거나 마니아적인 습성보다는, 이런 소재를 갖고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 볼 수 있을까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가만히 보면 영화의 장르적인 스타일보다는 내러티브에 더 관심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보물섬>이나 <해피 버스데이>도 그렇고 이야기의 트위스트적인 부분에 흥미를 갖고 있다. 그런 부분들을 늘 잡고 가는 것 같다. 장르와 상관없이 이야기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믹스하려고 한다. 그것이 내면적인 세계가 될 수도 있고, 판타지적인 부분이 될 수도 있다. 사실은 장르를 떠나서 크게 보면 판타지적인 요소는 갖고 있다. 그런 걸 좋아한다.


Q: 판타지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요소인가?

본격적인 SF판타지가 아니라 뭐랄까 생활 판타지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판타지! 지나가다 보면 “어, 뭔가 이런 게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드는 것들이 있다. <거울 속으로>의 거울이나 <해피 버스데이>의 생일 파티에도 그런 요소들이 배어있는 것처럼. 혹시 그게 다른 것이 아니었을까 하며 생각하는 게 재미있다.


Q: <황금시대>의 반장 감독님이었는데, 그렇다면 후배들 군기도 잡고 그런 건가?(웃음)

그런 건 아니다.(웃음) 워낙 감독들이 게으르고 말을 안 듣기 때문에... 10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커뮤니케이션하기 어렵다. 그래서 한 명만 정해서 간 거다. 인디스토리에서 옴니버스 영화를 3번째 하는 건데, 이런 영화를 하면 기술적인 부분에서 할 이야기가 있다. 매번 할 때마다 시행착오를 하기 때문에 미리 이렇게 해야 한다고 제안을 했더니, 매끄럽게 할 수 있도록 전체적인 진행을 해달라고 부탁하더라. 이송희일이나 김영남 감독 등은 영화 찍고 있어서 다 바쁠 때였다. 비교적 내가 좀 한가했다. 한가한 김에 하겠다고 나섰다.(웃음)


Q: 가수 분들과 친분이 많다고 들었다. 감독님의 외모도 가수 스타일이기도 하고.

하하하. 가수들하고 친한 것은 아니다. 얼마 전까지 홍대에서 살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홍대에 계시는 아티스트들을 좀 알게 되었다. 술 마시고 이야기를 하다 보면 다 건너서 알게 된다. 유일하게 조원선 씨만 알고 지냈다. 우연히 뉴욕에서 만나서 지금까지 연락이 되는 친구다. 어떻게 따지면 많이 아는 건 아니다.
 
거의 10년 전에 롤러코스터가 뉴욕에 놀러온 적이 있다. 당시 공부할 때였는데, 우연치 않게 뮤직비디오를 하나 찍어보겠다고 롤러코스터 음악을 골라 놓았다. 마침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같이 준비하던 조감독이 조원선 씨와 알고 있어서 연락이 되었다. 만나서 인사하고, 롤러코스터 음악으로 작업해도 되겠느냐고 허락을 받았다. 우리 집에도 놀러오고 술도 마시면서 친해졌다. 그리고 헤어졌는데, 이상하게 그 후에 가는 곳마다 원선 씨를 만났다. 내가 많이 다니는 것도 아닌데, 동네 클럽이나 카페에서도 만나고. 어디 식당 가도 만나고. 하다못해 후지록페스티벌에 갔는데 그 넓은데서 아무도 모르는데 유일하게 원선 씨를 만났다. 너무 신기했다. 그 인연으로 계속 연락이 되었다.


Q: 와와, 그렇다면 가수 조원선이 <페니 러버>의 주인공인 된 것은 운명적인 거다.

▲ 영화 ‘황금시대-패니러버’ 조원선


그렇다고 본다. 예전부터 연기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번에 마침 신곡 발표해서 그 음악을 영화에 썼다. 덕분에 영화적으로 잘 풀렸다.


Q: 조원선이 영화음악을 해도 분위기 있을 것 같다.


내가 연락을 해서 만나자고 했을 때 영화음악 맡기려고 그런 줄 알았다고 하더라. 음악을 하는 거냐고 물어봤지만 그게 아니라 배우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약간 당황을 했었다.


Q: 조원선의 음악은 자신만의 색채가 있다. 하지만 연기를 잘 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부담스러워 했을 것 같다.

내가 본 바로는 원선 씨는 연기에 대한 끼가 있었다. 뭔가 해보고 싶었던 마음이 있는 걸로 보였다. 어차피 처음이라 물어봤더니 앨범 준비하느라 바쁜 때 인데도, 운 좋게 딱 3일이 남았다. 본인은 사실 코믹한 연기를 하고 싶어 했다. 그런 영화는 아니라고 설명했다.


Q: 조원선이 코믹 연기를 하는 건 상상이 안 간다.

본인은 그런 걸 하고 싶어 했다. 만나면 재미있는 사람이다. 이런저런 얘기 잘 하고 잘 놀고. 옆에서 목소리나 이야기하는 걸 보면서 연기를 해도 잘나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의기투합해서 “한 번 해보자”라고 한 거다. 원선 씨가 작업에 합류했을 때는 완성된 시나리오는 아니었고, 원선 씨와 논의하면서 시나리오도 변했다.

원선 씨를 있는 그대로 하기 위해서 캐릭터의 직업도 가수로 바꾸었다. 원선 씨의 캐릭터를 그대로 살렸다. 처음에는 30대 중반의 여자와 10대 후반의 남자, 그들이 세월이 흐르면서 어떻게 변하는지에 초점이었다. 그러나 원선 씨가 연기를 한 적이 없으니, 뭘 만들어놓고 억지로 껴 맞추기보다는... 원선 씨가 편하게 할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그녀와 이야기하면서 시나리오를 수정했다. 콘서트와 공연 신도 들어가고. 그렇게 가수라는 캐릭터가 만들어졌다.

한물 간 상태에서 소년과 다시 만났을 때 관계가 어떻게 변하는지 보여준다. 노래도 마음에 들어서 직접 연주하는 것도 넣고. 새 앨범에 나온 4곡(조원선의 솔로 앨범 <Swallow>)을 삽입했다. 영화적 분위기와도 맞았다. ‘도레미파솔라시도’, ‘천천히’의 가사들이 여자 캐릭터와 어울렸다. “난 왜 쓸데없는 짓을 할까, 왜 나는 남들과 다를까” 하는 식의 가사들이 좋았다. 이 노래를 쓰면 간접적으로나마 캐릭터의 감정을 전달할 수 있겠다고 봤다.


Q: <페니 러버>의 연애가 경험에서 나온 건가? 혹은 특별한 동기가 있었나?

경험에서 나온 건 아니다. 이야기는 같이 만들었다. 내가 추계예술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는데, 학생들과의 워크샵이 있었다. 같이 모여서 이야기하다가 나온 거 였다. 그 때 한 학생이 원조교제 같은 이야기를 꺼내놓았는데, 거기서 이야기를 발전시켜 봤다. 30대 중반의 여자와 10대 후반의 남자, 그 남녀의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볼까 고민했다. 그러다가 <황금시대>의 주제에 맞춰 돈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야 하니까, 10원짜리 동전에 대한 걸 집어넣었다. 시나리오를 같이 한 친구가 있다. 둘이서 이야기를 더 발전시켰다.


Q: 동전에 뭔가를 적어주는 것은 재미있는 아이디어다.



특별히 그런 경험은 없었지만, 그 친구가 여자였기 때문에 30대 여성의 심리적인 부분을 더 부각시켰다. 동전에 뭘 쓰는 건 순전히 아이디어를 낸 거다. 원래는 거기다 다른 말을 쓰는 건데, 동전에 년도가 있으니까 그걸 생일로 하면 어떨까 해서, 날짜를 적어 넣었다. 거의 다 순수한 상상에서 나온 거다.


Q: 인터뷰 전까지 계속 촬영을 하다가 왔다고 들었다. 차기작은 무엇인가?


아리랑 TV에서 시작한 프로젝트인데, 디앤디미디에서 제작했다. (총 10부작으로 제작될 ‘영화, 한국을 만나다’는 촬영을 마친 뒤 2, 3개 부로 각각 묶여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될 예정이며, 극장 개봉도 추진될 예정이다). 일단 편집중인데 개봉은 더 지켜봐야 한다. 그 후엔 TV를 통해 방영된다. 자세한 건 나와 봐야 알 것 같다.

배창호 감독님이 제주도, 전계수 감독이 춘천, 문승욱 감독이 인천, 윤태용 감독이 서울을 각각 맡아서 작업하고 있다. 난 얼마 전에 부산을 가서 2주 동안 촬영하고 왔다. 1억짜리 저예산 영화다. <그녀에게>라는 영화다. 한 번 더 음악하는 사람과 영화를 찍었다. 이우성이라고 <코코어> 밴드에서 보컬하는 분이다. 여배우는 신인으로 오디션으로 뽑았다. 독립영화 많이 하시는 조성하 씨도 나오고. 부산에서 일어나는 일을 담았지만 뒤로 갈수록 판타지로 변한다. 이우성이 영화감독으로 나오고 부산에 촬영 중인 여배우에게 시나리오를 보여주기 위해 온다. 여배우가 여자 캐릭터를 멋지게 바꾸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바람에, 일주일 동안 시나리오를 고친다. 시나리오를 고민하는데, 우연히 오토바이를 탄 여자를 보게 되어서 그녀를 모델로 삼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녀를 쫓아다니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Q: 소문난 홍대 피플이라서 재밌는 이야기 좀 부탁하려했으나, 최근에 홍대를 떠났다고 정보를 입수했다. 홍대의 상업적인 변화 때문인가?

홍대에서 4년을 지내다가, 얼마 전에 떠났다. 동네가 너무 비싸져서 더 이상 있을 수가 없다. 비싸니까 바깥으로 나가는 것도 있고. 정말 시끄러워졌다. 조용히 작업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닌 것 같다. 처음에 왔을 때만 해도 주위의 아티스트들이 작업도 하고 조용히 술도 마시고 했는데, 그 사이에 너무 많이 변했다. 다들 연희동, 연남동으로 많이 빠진 것 같다. 나도 거의 끝물이었다. 내가 아는 분들은 이미 다 나갔다. 나도 연희동으로 갔는데, 조용하더라. 정말 조용한 곳을 가려면 서울을 빠져나가야 하는데, 아무래도 문화적인 것과 교류를 생각하다 보니 부근에 있는 거다. 서울을 빠져나가면 고립된 느낌이라 그건 싫다.


Q: 관객과의 소통이나 취향을 의식하는 건가?

관객이나 대중과의 취향을 알려고 한다면 차라리 가로수길에 있는 것이 낫다. 좋아하는 것과 가까운데 있어서,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려는 생각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걸 사람들이 좋아하면 다행이 좋은 거고.


Q: 계속 내러티브에 관심을 갖는다는 말에 대해서 부연 설명을 듣고 싶다.

영화를 찍으면서 배운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이것저것 많이 하고 싶다. 아직 젊고 시간이 많이 있다고 본다. 급하게 마음먹지 말고, 조급하게 굴지 않고, 원하는 것들을 많이 해보자는 주의다. 너무 멀리 이야기를 찾기보다는 가까운 주변에서 찾는 게 좋다. 나이가 들며 좀 더 인생에 대해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조금 더 경험이 필요하다. 연륜이 생기면 드라마적인 이야기로 나갈 거다. 지금은 좀 더 영화적인 소재나 판타지로 이야기를 만드는 게 재밌다. 판타지나 스릴러에 더 관심이 생긴다. 기회나 시나리오가 있으면 다른 것들을 도전해 보는 것도 좋다. 계속 추구하는 것은 조금 더 새로운 방식을 찾아내는 것이다. 내러티브도 좀 더 다른 방식으로 실험적으로 시도하고.


Q: 어느 감독의 영향을 많이 받은 편인가?

대학 졸업하고 영화를 시작한 편이라, 영화 마니아는 아니었다. 영화 공부하면서 많은 걸 배웠다. 새로운 것들을 뒤늦게 찾아보는 편이었다. 어렸을 때는 스필버그 영화를 좋아했다. 영화를 공부해보자고 마음먹은 후에는, 좋아하는 사람들이 뉴욕 베이스의 감독들이었다. 뉴욕 인디펜던트 영화들을 보면서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뉴욕으로 가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면서 다른 영화들, 새로운 영화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부분들을 나도 시도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상업 영화와 뉴욕에서 봤던 영화들끼리 충돌을 하면서, 어느 정도 믹스가 되는 게 재미있었다. 앞으로도 그 사이를 줄타기를 할 것 같다. 단순히 예술영화와 상업영화의 경계로 두지 않고, 그것들을 믹스하는 방법이 있을 거라고 본다. 내가 그런 방법들을 시도하는 것 같다.


Q: 해마다 선댄스 영화제에서 주목받은 영화들이 그런 성향이 많은 것 같다.

할리우드도 많이 변하고 있다. 예전 같으면 상업적인 코드 내에서 용납이 안 될 것들도 지금은 받아들여진다. 확실히 발 빠르고 스마트한 감독들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안주하면 살아남을 수가 없으니까. 그런 돌파구를 마련하는 것이 생각보다 빨리 진행된다는 느낌이다. 처음에 <거울 속으로>할 때는 한국에서는 할리우드적인 문법을 잘 본 적이 없었다.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만드는 사이에도, 문법이 바뀌거나 무너지고 있다. 그런 것들에 대한 빠른 포착과 이용은 필요하다. <거울 속으로>는 할리우드의 상업적인 코드를 갖고 오려 했지만 적절하게 활용을 못했다. 당시에는 그걸 해석하거나 만들어내는 능력이 없었다.


Q: 다양한 영화를 시도하기에는 지금 한국 영화의 여건이 너무 어렵다.

오히려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사실 어느 정도 예견된 상황이었다. 언젠가 거품이 다 빠질 것이고 내공 있는 감독들만 남을 것이다. 살아남는 방법들을 찾아나갈 것이다. 얼렁뚱땅 자본의 논리가 아니라, 연출자의 창작능력과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방식이 드러날 것이다. 작년에서 올해를 지나가면서 더 그런 게 드러나는 것 같다. 한국의 문화적 토대는 넓지도 깊지도 않다. 영화가 하나 뻥 터지면 덩달아서 가고, 안 되면 망하고, 기복이 심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욕구가 늘 있었다. 내가 보기에는 지금부터 달라진 영화나 새로운 영화가 출연할 거다. 사실 일본 영화들이 산업적으로 변화를 밟아온 대로 한국영화도 그렇게 될 거라 본다. 큰 영화는 큰 대로 가고, 작은 영화는 작은 대로 가고. 대신 좀 넓어지면 개개인이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다. 각개전투로. 지금이 그럴 때다.


Q: 그런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자신만의 대처방안은 있나?

일단 데뷔작 <거울 속으로>를 통해서 상업 영화계에 발을 담궜다. 기본적으로 제반 요소를 충족시켜야 영화가 들어가는 것이기에, 많은 감독들이 캐스팅이나 투자 부분에 대해서 오랜 시간을 기다리다 보니 영화에서 점점 멀어진다. 그러다 영화를 못 찍게 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그냥 영화를 찍는 상황이 좋아지기를 기다리는 것은 감독으로서 사명감이 아니다. 끊임없이 작업을 하고 있어야 영화감독이다. 그래야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

그래서 옴니버스이든 단편이든 계속 작업을 하자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방법을 찾다보면 또 기회가 찾아온다. 어쨌든 작업하면서 실력을 키울 수고 있고, 더욱 배워나갈 수도 있다. 그야말로 시나리오만 쓰고 있다고 영화적인 실력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어떡하든 방법을 찾아서 하자는 주의다. 예산이 작으면 작은 대로. 뭔가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 살아남는 방법이다. 영화 동료 만나면 몇 년째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데,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뭐든 찍고 있고, 뭐든 만들고 있어야 한다. 요즘 같은 상황에서는 천 만원이면 장편 만들 수 있고. 2주면 영화 한 편 찍을 수 있는 상황이다. 카메라 한 대와 컴퓨터 한 대만 있으면 영화가 가능하다. 영화를 만들려고 하는 욕구가 있다면 방법을 찾으려고 하는 게 맞다.


Q: 10명의 감독이 참여한 <황금시대>에서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단편이 있었다면 추천을 바란다.

워낙에 많다. 하나하나 깜짝 놀랐던 부분들이 있었다. 다들 뛰어난 감독들이라서 500만원이라는 작은 돈으로 어떻게 만들지 궁금했다. 쇼킹할 정도로 많이 놀랐다. 정말 스타일도 다 다르고, 각자 잘 할 수 있는 분야들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찍는 방식이 좋았다.

사실 그 돈으로 영화를 찍는다는 게 버거울 수 있다. 500만원 이상의 욕심을 부린다면 영화적 완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500만원 예산 내에서 계획을 세우고 대안을 갖고 만들어야 했다. 만들면서 “내가 또 오버했구나, 욕심을 부렸구나”라고 느꼈다. 욕심 부리지 않고 한도 내에서 끝내는 것에 많이 놀랐던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이송희일 감독의 영화 <불안>이 가장 경제적이었다. 할 수 있는 부분들을 잘 뽑아냈다. 보면서 영화를 이렇게 찍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욕심 부리지 않고 10분 내에 갈 수 있는 한, 가장 깊게 가야 한다. 그런 부분들을 뽑아낼 수 있는 연출력이 필요하다. 스마트한 감독이다.


Q: 단편을 잘 찍을 수 있는 노하우가 있다면?

단편이든 저예산이든, 일단 예산에 맞춰야 한다. (웃음) 시나리오 단계부터 그 예산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500만원짜리 영화라면 그 한도 내에서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 거기에 맞춰서 시나리오도 쓰고. 그건 배우나 소품도 다 마찬가지다. 없는 것들을 만들어내기는 어려우니까, 주변에 있는 것들을 최대한 활용하게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해야 하니 아는 사람들, 선배들을 총동원하는 거다. 사실 그 분들한테 빚을 지는 거다. 정말 그들에게 한 번만 도와달라고 하는 거다. 다들 공유하는 부분이 있는 거다. 지금은 어렵지만 좋은 기회가 있을 것이고. 서로 일종의 약속이다. 신뢰감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 평소에 좋은 인간관계를 갖고 있기는 해야 한다. 좋은 인간 관계가 있어야 영화를 찍을 수 있다. 아니면 혼자서 찍어야 한다. 이것도 마찬가지다. 주변에 나밖에 없다면 내가 하는 거고, 촬영감독이 있다면 바로 부탁하고.


Q: 권종관 감독이 지난 번 인터뷰에서 김성호 감독께 궁금한 거 없냐고 물어보자,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을 꼭 물어보라고 하더라. 이런 질문을 하니 꼭 릴레이 인터뷰 같다.

나한테?(웃음) 사실 많이 가려서 그렇다. 가려서 안 보이는 거다. 애가 둘이다. 순전히 연막  작전이라고 볼 수 있다. 겨울 되면 더 안 보이고, 여름 되면 더 잘 보이고, 뭐 그렇다.

Q: 영화계 인사들에게 김성호 감독이 굉장히 재미있게 사는 분이라고 소문을 들었다. 요즘 즐거운 일이 없을까? 사는 게 팍팍해서 뭔가 색다른 에너지가 필요하다.

영화 찍을 때가 제일 재미있다. 부산 촬영이 2주라서 일정이 무척 빡빡했는데 그런데도 매우 재미있게 찍었다. 이젠 가족이 있어서 혼자서 뭘 하길 쉽지 않다. 남들처럼 영화나 책을 보고 음악 듣는 정도다. 원래는 여행 다니는 걸 좋아한다. 여유가 있을 때는 많이 다녔는데 요즘은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 제일 좋은 곳은 오키나와였던 것 같다. 너무 좋아서 몇 번 갔었다. 하지만 요즘은 경제력이 안 되니까 제주도로 간다.(웃음) 오키나와는 한적한 느낌도 있고, 붐비지도 않는다. 동네에 노인들 밖에 없다. 거기에 가면 좀 쉰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아무래도 남쪽이라서 한국하고는 풍광도 다르고 열대성이 느낌이 많이 난다. 가면 이국적인 느낌이 많이 난다. 마음도 편해지고. 작업할 때는 혼자 있는 시간을 마련하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시나리오 쓸 때만 잠깐 떠나 있는 시간을 갖는다. 그런게 괴롭기도 하지만 나름 즐기는 편이다. 평소에는 애들 본다. 첫째가 다섯 살, 둘째가 돌 지났다.


Q: 요즘은 패션지 기자들한테 제주도 올레길이 핫 트렌드로 떠올랐다.

난 올레길에서 걷지는 않았고 렌트 차로 다녔다. 지난번에 가보니까 정말 거기서 걷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예전에는 걷는 분들이 별로 없었다. 황금시대의 채기 감독은 제주도에 계신다. 서울을 정리하고 이사를 해서 거기서 사신다.


Q: 그렇다면 뉴욕에 있을 때는 어땠나?

유학시절에는 오히려 경제력이 더 안 좋아서 어디로 가질 못했다. 많이 돌아다니지도 않았다. 재미있는 동네라서 다른 곳에 갈 이유도 없었다. 뉴욕 안에서 재미있게 지내려 했다. 뉴욕은 갤러리나 뮤지엄, 소호 등등. 좋은 곳이 아주 많다. 짧게 여행가면 남들이 가는 곳만 갈 수밖에 없다. 사실은 오래 있으면 거기 사는 사람들이 가는 곳을 알게 되니까 그런데서 많이 놀고 지냈다. 이스트빌리지 쪽의 바나 카페나 클럽이라든가. 차이나타운에도 재미있는 곳이 많고. 하지만 뉴욕도 워낙 많이 변하다 보니까.


Q: 한국에 있으면 그런 문화들이 서서히 유입되는 게 느껴지나?

한국에 그런 문화가 들어오기는 하는데, 굉장히 고급화 되어서 들어온다. 사실 뉴욕에 같이 있던 사람들이 고급스러운데는 같이 잘 안 간다. 싸면서 재미있는 곳을 찾는다. 정작 그런 것들은 여기로 많이 안 들어온다. 그나마 홍대 쪽이 아티스트들을 베이스로 해서 활동들이 있기는 하다. 홍대가 가장 비슷하다.


Q: 혹시 애를 업고 마트 갈 때도 선글라스 쓰고 가나? 워낙 에지가 있으셔서(웃음)

그야 하던 게 있으니까. 나갈 때 유모차 끌고 가니까 다들 반긴다.(웃음) 요즘은 문화가 변했다. 남자들이 애 업고 밥 먹이고. 많이 한다. 예전 같지 않다. 그런 걸 직접 다 해야 한다. 안 그러면 이혼 당한다. (웃음) 밖에서는 영화로 살아남아야 하고, 집에서는 그렇게 해서 살아남아야 한다. 뭐든지 해야 한다.


Q: 요즘 삶에서 바라는 점이 있다면?

정권의 누가 좀 물러났으면 좋겠다.(웃음) 요즘 여유가 없다는 생각 많이 한다. 서울에서 사는 게 힘들어서. 너무 빠르게 변하니까 따라가기도 힘들다. 사람들이 주인이 되어서 자신의 삶을 영위해야 한다. 주위환경이 빨리 변하니 그저 따라가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나도 모르게 서울에 살면서 뒤쳐진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왠지 뭔가를 바꿔야 할 것 같은 생각도 들고. 그게 정말 싫다. 편하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면 좋은데, 한국은 뭐든 정말 빨리 바뀐다. 오키나와가 좋았던 것도, 옛날 게 그대로 있다는 점이었다. 느긋하게 천천히 흐른다. 반면 서울은 자꾸 변하고 없어지고 달라지고 새로운 게 생긴다. 그것만큼은 정말 싫은 거 같다. 계속 이런 상황이라면 빨리 떠나야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갖고 있는 것들을 조금 더 오래 봤으면 좋겠다. 오래 놓아두거나 가지고 있으면 좋겠는데, 왜 이렇게 바꾸려고 하는지! 정말 정권이 변한 이후로 더 많은 것이 변하고 있다.


Q: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살면 좋을까?

재미있게 살아야지! 다들 밖을 내다보지 않는다. 앞으로 갈 뿐 뭘 해도 되돌아보지 않는다. 이제 나이가 들면서 내가 어떻게 변하는지 바라보고 있다. 그렇게 사는 게 좋다.


글    | 전종혁 기자

사진 | 이란

작성일 2009.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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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4.19 네이버: 오늘의 영화 ”

영화 현장을 가다

촬영 현장, 시사회 현장 등 궁금한 영화현장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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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국제영화제 개막작 [숏!숏!숏!] 중 한 작품 [페니러버] 촬영현장


"도레미파솔라시도...(중략) 그 무엇보다 정말 좋아하게 되었으니깐." 롤러코스터의 보컬 조원선이 촬영리허설을 위해 신곡 '도레미파솔라시도'(이 곡은 3월16일에 새로 발매된 솔로 첫 앨범 [SWALLOW]의 3번 트랙이다.)를 부를 때마다 분주하게 촬영을 준비하던 스탭들은 잠시 멈춰 서서 그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솔로앨범 6번 트랙인 '아무도, 아무 것도'를 부르는 조원선과 드럼의 손경호, 베이스의 박현준.(위)


카메라 옆을 지키고 있던 촬영부는 톡톡 튀는 음악에 발로 리듬을 맞추고, 스크립터는 기록하던 스크립용지를 가슴에 끌어안은 채 다른 스탭들과 함께 박자에 맞춰 고개를 끄덕인다. 한 곡이 완전히 끝나자 다들 공연장에 온 것처럼 "와"하며 환호성과 함께 박수를 보낸다. "앵콜"을 요청할 법도 한데 스탭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촬영준비로 재빨리 움직인다. 마치 음악이 끝나면 일상으로 돌아가는 뮤지컬 영화의 한 장면처럼 말이다. 3월8일 밤10시 홍대의 어느 카페. 이곳에서 '제10회 전주국제영화제 숏!숏!숏!'중 한 작품인 김성호 감독의 단편 [페니러버]의 리허설 촬영이 한창이다.

[숏!숏!숏!]은 전주국제영화제의 단편영화 제작지원 프로젝트다. 이번 숏!숏!숏!은 전주국제영화제 10주년을 기념해 충무로와 독립영화를 대표하는 10명의 젊은 감독들이 참여한다. 이날 현장의 김성호 감독은 물론이고 최근 [탈주]를 작업한 이송희일 감독, 개봉예정인 [보트]김영남 감독, [그녀는 예뻤다]최익환 감독 등 참여하는 감독들의 면면이 제법 알차다. 이들은 10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 안에 최근 한국인의 최대 화두인 '돈'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펼칠 예정이다. 김성호 감독의 [페니러버]는 '십 원'을 매개로 한 '관계'를 이야기하는 영화다. 가수인 30대 '여자'(조원선)는 성관계를 가진 어린 남자 '그녀석'(유형근)로부터 십 원짜리 동전을 받는다. 2년 후, 여자는 '그녀석'에게 새로운 여자 친구가 생겼다는 말을 듣고 마음을 정리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로부터 받은 십 원짜리 동전을 어떻게 처리할지 못내 마음에 걸린다. 이날 촬영 분은 여자가 클럽에서 그녀석이 앉았던, 그러나 지금은 비어있는 자리를 바라보며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다.

"영화를 핸드폰 카메라, 디카로 찍는다고?!" 때마침 현장에 재미난 풍경이 펼쳐진다. 흔히 다양한 공연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여러 대의 카메라가 동원되는 경우는 많지만 핸드폰 카메라나 디카로 촬영하는 건 흔치 않다. 촬영감독은 핸드폰 카메라를 들고 노래를 부르는 조원선을 촬영한다. 때로는 그녀의 코앞에서, 때로는 카페 밖에서 창을 걸치며 자유롭게 찍고 있다. '인물(조원선)의 자연스러운 감정과 행동을 최대한 담아내려고 하나보다'라고 추측하고 있을 때, 김성호 감독이 힌트를 던진다. "핸드폰 카메라, 디카와 같은 저해상 매체를 활용해 편집에서 다양한 실험을 하고자 한다. 자칫하면 이야기가 청승맞을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재미있게 보여줘야 한다. 그러기위해서는 조원선의 감정과 행동이 자연스럽게 담겨야 한다." 노래가 끝나자 스탭들의 박수소리가 감독의 '컷'사인을 대신한다.

 

스테디캠에 달린 메인 카메라는 공연 전체의 풍경을 담는다. 그리고 촬영감독이 휴대폰 카메라로 조원선을 가까이서 촬영하고 있다.(좌)

메인 카메라로 촬영하고 있는 촬영감독과 휴대폰 카메라로 촬영하고 있는 촬영부.
이 작품의 촬영은 콘티에 정해진 장면만 찍지 않고 인물의 감정, 행동, 습관에 따라 즉흥적으로 다양하게 보여주는 것이 원칙이다. (우)

 

영화 속에서 첫 솔로앨범 [Swallow]의 3번 트랙인 '도레미파솔라시도'를 부르는 조원선과 영화를 위해 모인 밴드(드럼을 맡은 손경호(왼쪽), 베이스를 맡은 박현준(오른쪽)).
이들 덕분에 현장은 촬영장인 동시에 작은 콘서트 장이었다. (좌)

한 테이크가 끝나고 꼼꼼하게 사운드를 체크하는 김성호 감독. 그는 "이전의 작업 때와 달리 형식에 제한을 두지 않고 최대한 자유롭게 즐기려고 한다"며 각오를 밝혔다. (우)


핸드폰 촬영에 정신 팔린 나머지 롤러코스터의 조원선만큼 반가운 얼굴들을 놓칠 뻔 했다. 촬영장을 뜨겁게 달구는 밴드가 그 장본인들이다. 가만 보니 멤버가 꽤 화려하다. 베이스 기타는 이 영화에서 음악감독을 맡은 삐삐밴드, H2O의 박현준, 드럼은 이미 [고고70]에서 동근 역으로 출연했던 문샤이너스의 손경호, 피아노는 하림, 기타는 'CJ김' 김찬준이다. "연습시간이 1시간 남짓한 급조된" 밴드라는 말이 무색하리만치 이들이 빚어내는 음악은 감미롭고 열정적이다. 옆에 앉아있던 밴드의 한 관계자는 "연습시간이 짧은데도 저렇게 연주하면서 호흡을 맞춰나가는 모습이 정말 아름답다"고 말한다. 이들의 연주가 늦은 밤까지 이어지는 촬영으로 피곤한 배우와 스탭들에게 큰 힘이 된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페니러버]는 후반작업을 거쳐 다른 9명의 감독들의 작품과 함께 4월30일에 개최되는 제10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월드프리미어로 상영되고, 9월에 국내개봉 될 예정이다.


클럽 DGBD - 밤(과거)
한 줄기 스팟으로 조명이 내리고 스테이지 위에서 조명을 맞고 있는 여자.


나지막이 옛 노래를 부르고 있다.
스테이지 밑으로 보이는 사람들.
그 사람들 사이로 보이는 교복 입은 남학생.







여자(조원선)의 공연을 지켜보고 있는 '그녀석'(유형근). "시나리오에 표현된 역할을 최대한 충실하고 자연스럽게 연기하려고 한다"는 그의 말을 통해 차분한 인상 뒤에 숨겨진 (연기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볼 수 있었다.







 






클럽 DGBD - 밤
현재의 여자, 스테이지 위에서 흥얼거리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스테이지 밑으로 보이는 사람들.
여자, 노래를 부르다 시선을 돌려 스테이지 밑을 쳐다 본다.
교복 입고 서 있던 그 녀석 자리에는 텅 빈 채 빈자리로 남아있다.
씁쓸한 표정으로 다시 노래를 부르는 여자.






조원선은 자신이 맡은 '여자' 캐릭터를 "쓸쓸하고 공허함이 있는 인물"이라며 "최대한 자연스럽게,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인터뷰 1] 김성호 감독

 

총3회차 촬영 중 마지막 날이다. 빨리 찍어야 한다는 조급함이 생길만도 한데 의외로 김성호 감독은 느긋하고, 현장을 즐기고 있다. 그녀(조원선)의 공연을 보는 관객의 한 사람으로 카메오 출연하다가도 꼼꼼하게 모니터를 확인하고 사운드를 체크한다. "이번 영화를 재미있게 작업하려고 한다"는 김성호 감독을 촬영 전에 잠깐 만나보았다.


  올해로 전주국제영화제 10주년이다. 그래서 이번 숏!숏!숏!에 부담이 크겠다.
   
생각보다 큰 부담은 없는 것 같다. 이전에 김종관, 민동현 감독과 함께 만든 옴니버스 영화 [눈부신 하루]때는 경쟁이나 서로에 대한 의식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감독이 10명이라 그런지 서로 "잘해보자"는 분위기다. 물론 10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어떻게 하면 주제인 돈을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까'하는 고민이 있지만 그래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십 원짜리 동전은 무엇을 의미하나.
   

사실 사람들은 십 원짜리 동전을 꼭 필요할 때만 쓰고 평소에는 하찮고 쓸모없다고 생각하지 않나. 그런 것처럼 남녀관계에 있어서도 남자든 여자든 상대방이 귀찮아지면 하찮게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을수록 '내가 혹시 상대방에게 십 원짜리 동전처럼 쓸모없게 여겨지지 않을까'하는 고민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나나 상대방은 그런 하찮은 존재가 아님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지난 십년을 겪어온 전주국제영화제의 고민을 대신 표현한 것이기도 하겠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시간이 지날수록 젊은 친구(영화제)들은 성장하고 본인(전주국제영화제)은 점점 늙어가면서 관계가 뒤바뀌어간다. 그러면서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남녀 주인공(조원선, 박현준) 모두 가수다. 어떻게 캐스팅했나.
   

두 사람 모두 뉴욕에서 만났다. 내가 [거울 속으로](2003)의 시나리오를 작업하고 있을 때였는데, 그때 롤러코스터가 뉴욕에 놀러왔고 우연히 만나게 됐다. 당시 롤러코스터의 [러브바이러스]를 정말 좋아했다. 그리고 한국에 들어와서 신기하게도 가는 곳마다 롤러코스터를 만났다. 특정장소에서 약속하고 만났던 게 아니라 바(Bar)나 길에서 우연히 만났다. 그때마다 조원선씨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그가 연기하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현준씨 역시 오랜 인연으로 캐스팅했다.



  전문배우가 아닌 이들을 캐스팅한 이유는 있을텐데.
   

전작인 [해피 버스데이] [눈부신 하루]에서는 학창시절 때 배웠던 체계적인 방식으로 작업을 했다. 하지만 이번 작업은 이전과는 다른, 내 방식대로 재미있게 하려고 고민했다. 그래서 생각했던 것이 바로 전문배우를 기용하지 않을 것, 시나리오 그대로 표현하지 않을 것, 콘티 없이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찍을 것, 카메라를 들고 거창하게 움직이지 말고 핸드폰 카메라, 디카와 같은 매체를 적극 활용할 것 등이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진 모르겠지만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었다.


[인터뷰 2] 조원선, 박현준, 유형근

의외였다. 다수의 독립영화([다섯은 너무 많아](감독 안슬기, 2005년) [은하해방전선](감독 윤성호, 2007년)등)에 출연하면서 배우로서 성장하고 있는 유형근은 그렇다 하더라도 가수인 롤러코스터의 조원선과 삐삐밴드 출신의 박현준이 '연기'라니. 이들을 만나기 전까지 머릿속에서 연기를 하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상상할 수가 없었다.

역시 인연이었다. 오래 전 조원선과 박현준은 뉴욕에서 김성호 감독을 만나 지금까지 돈독히 지내왔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조원선은 첫 솔로앨범 를 준비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출연을 흔쾌히 승낙했나보다. 또한 박현준은 MBC에서 방영 중인 [돌아온 일지매]의 OST 곡 <나는 일지매다>로 밴드 'H2O' 활동을 재개했음에도 배우와 음악감독을 맡아 김성호 감독을 돕는다. 참고로 박현준이 연기한 '남자'는 여자(조원선)가 어린 남자(유형근) 다음으로 만나는 남자다. 아무래도 가수다 보니 연기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 것 같다. 조원선은 "앨범 준비로 연기를 제대로 소화할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이 있긴 하다. 그러나 (연기를)처음 하는 거라 즐거운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박현준은 "시나리오 분량이 그리 많지 않고 주로 연주 장면이라 연기가 크게 부담되지 않는다"며 상대적으로 꽤 여유롭다. 학창시절 때 이들의 음악을 많이 들었다는 유형근은 "실제로 만나게 되어 신기하다"고 수줍게 고백한다. [은하해방전선]에서 일본 최고의 영화배우 '기무라 레이'역을 맡아 강한 인상을 선보였을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그는 "다른 이미지를 의식하지 않고, 시나리오에 충실하면서 자연스럽게 역할을 받아들이려고 한다"고 각오를 밝힌다. 제10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될 이들의 새로운 모습이 기대된다.

콘텐츠 제공씨네21,   사진이혜정,   김성훈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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