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동진의 뷰파인더] 전주에서 희망을, 칸에서 기대를! ”
[오동진의 뷰파인더] 전주에서 희망을, 칸에서 기대를!

김성호 감독과 막걸리 잔을 부딪쳤다. 오늘 기분이 좋다고 얘기했고 김 감독도 역시 기분이 좋다고 했다. 연일 며칠째 술을 마셨지만 오늘도 취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취하고 싶었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김성호 감독의 <그녀에게> 상영을 마친 뒤였고, 관객들의 반응이 너무 좋았으며, 이래서 영화를 만들면 다들 영화제에 오고 싶어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래서 가능하면 다른 영화제에도 이 작품을 내보내야겠다고 결심했다. 새삼 전주국제영화제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녀에게>는 삼중액자 구조를 지닌, 다분히 초현실주의적 느낌이 나는 작품이다. 전주국제영화제 데일리에 어떤 관객평론가가 이 영화를 보고 <유주얼 서스펙트>가 생각났다고 썼지만 그건 좀 적절치 못한 비유였다. 그보다는 데이비드 린치 영화에 가깝다. 잔혹하거나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뺀 린치의 영화. <그녀에게>의 줄거리를 여기서 중언부언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 영화는 결국 영화를 만드는 감독 자신의 이야기며, 감독의 머릿속 회로에는 굉장히 복잡한 미학이 떠다닌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무엇보다 영화란 이미지의 예술이라는 것을 보여준 작품이다. 없는 돈에, 진실로 강퍅한 제작비로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 준 김성호 감독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돈이 너무 없다는 게 한편으로는 감독에게 부담을 덜어준 것도 사실이다. 감독은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여야 하며, 돈이 많으면 그런 존재가 되기 어렵다. 불안이 영혼을 잠식하는 것이 아니라 돈이 영혼을 갉아먹기 때문이다.
정말 오랜만에 기분이 좋다. 영화계 분위기도 좋다. 바야흐로 5월이고 극장가가 터지기 시작하는 때인데, 이럴 때 이창동의 <시>와 임상수의 <하녀>가 칸국제영화제에서 큰 성과를 거둘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더더욱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두 영화, 특히 이창동의 <시>는 이창동 최고의 작품이라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고, 아마도 황금종려상을 탈 수 있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신중하게 제시되고 있다.
한국일보 영화기자 라제기는 <시> 얘기를 할 때마다 눈시울이 붉어지는데, 그게 설령 막걸리를 마신 탓이라고 해도 그가 하는 말 가운데 이것 하나만은 귀에 깊숙이 박혔다. 라제기는 <시>가 황금종려상을 타면 세계 영화계의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요즘 <시>에 대해 맹목적일 만큼 지지하고 다닌다. 하기야 그건 조선일보의 한현우도 마찬가진데, 그 역시 <시>의 여주인공 윤정희 씨에 대해 칸이 이 여배우를 지금에서야 발견한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게 될 것이다, 라고 썼던가.
두 사람의 호평이야 어찌 됐든 <시>가 크게 주목받게 될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시>와 <하녀>가 5월과 6월, 치열한 승부수가 벌어지는 극장가에서 한국 영화의 새로운 생존법을 보여주게 된다면, 그건 분명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영화는 기이하게도 중간중간 예술적 상업 영화가 크게 한 방을 터뜨리며 국내 영화계의 미학적 심지를 가다듬게 만든다. 사람들로 하여금 돈, 돈, 돈 하게만 만들지 않는다.
때 묻은 영혼을 시원하게 씻어낼 수 있게 하는 영화를 찾게 만든다. <시>와 <하녀>가 주목받고, 7월에 강우석 감독의 <이끼>까지 성공한다면 영화계의 올 한 해 ‘장사’는 어느 정도 끝낼 수 있게 될 것이다. 어깨가 무겁겠지만, 이들 감독의 영화들이 그런 역할을 꼭 해야만 하는 건 그 때문이다. 올해 칸국제영화제는 그 어느 때보다도 북적댈 것이다. 날씨도 덥지만 영화에 대한 열기 때문에 더 그럴 것이다.
그 열기를 한국 영화가 듬뿍 받았으면 좋겠다. 그럴 때도 됐다. 지난 몇 년간 다들 고생해 왔으니까. 이제는 다시 영화계가 활발하게 작동할 때가 됐다. 전주에서 칸으로 이어지는 환상과 기대에 대한 단상 끝.
무비위크 2010년 5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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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
- 2010/05/23 18:48
- Category:
- text diary
- Tag:
- 그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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