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05.17 movieweek: 인터뷰 ”

‘그녀에게’ 김성호 감독, “가장 자유롭게 찍은 영화다”


-영화를 본 첫 느낌은 ‘아름답다’였다. 사운드 없이 봐도 충분히 매력적이라고 느낄 만큼 영상에 정말 신경을 많이 썼구나 싶었다.

그렇게 봐줘서 고맙다.(웃음) 워낙 저예산 영화라 촬영감독과 저예산이라는 걸 너무 티 내지 않는 선에서 찍자고 얘기했다. 예산이 부족해서 밤 촬영을 못하니 해질 무렵이나 새벽 시간을 이용했다. 그래서 영화 톤이 전체적으로 예뻐진 게 아닐까.

-몽환적인 톤이 실제와 허구를 오가는 영화의 내용과도 잘 어울리는 것 같다.

그렇다. 로케이션의 힘도 컸던 것 같다. 부산은 다른 영화에서 많이 노출된 장소이기 때문에 일단 익숙한 장소들은 다 뺐다. 남들이 가보지 않은 장소를 골랐는데 꽤 괜찮은 곳이 많더라.

-영화의 배경으로 부산을 직접 선택한 건가?

그건 아니다. 제작사에 가보니까 다른 감독님들이 다 고르고 부산만 남아 있더라.(웃음) 그런데 사실 난 서울, 제주, 인천에서 영화를 찍어본 적이 있거든. 어렸을 때 부산에서 살았던 적도 있고.

-영화 속 부산이 굉장히 낯설어서 감독이 ‘부산의 이방인’이라고 생각했다. 판잣집 풍경은 지중해의 느낌까지 들던데.

처음에는 어릴 적 기억을 쫓아가보려고 했는데 막상 부산에 가보니 너무도 많이 변했더라. 나도 판잣집이 좋았다. 거기가 감천2동인데 아주 예전에 사진으로 본 적이 있다. 언젠가 꼭 영화에 담아보고 싶었다. 또 마지막 판타지 신에 등장한 곳은 외양포라는 곳인데 일제 때 지은 군사시설이라더라. 마치 동남아시아의 어느 섬에 온 것처럼 너무 느낌이 좋았다.

-2주 동안 즉흥적인 시나리오로 작업했다고 들었다.

시나리오를 수정해야 하는 영화감독과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여자, 딸을 찾으러 온 아버지. 이 정도의 모티프만으로 출발했다. 네 페이지짜리 시놉시스를 들고 배우들을 만나서 예산도 얼마 없고 촬영 기간도 2주밖에 안 되는데 무작정 찍어보고 싶다고 얘기했다. 작년에 <황금시대>(2009)의 ‘페니 러버’를 찍을 때 시나리오대로 찍지 말자고 다짐했다. 시나리오대로 하면 매너리즘에 빠져서 생동감이 많이 떨어지는 것 같더라. 그 작업이 내게는 굉장히 만족스러운 시도였다. 장편도 이렇게 도전해 보면 어떨까 욕심이 생기던 참에 이번 프로젝트가 들어온 거다. 시나리오를 쓸 수 있는 물리적인 시간도 없었기 때문에 절호의 찬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왜 주인공을 감독으로 설정한 건가?

부산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라는데 준비 시간이 너무 짧더라. 가장 쉬운 방법은 아무래도 내 경험을 가져다 쓰는 거니까 그렇게 된 것 같다. 사실 감독이 배우를 찾으러 왔다가 누군가를 만나는 이야기는 예전부터 갖고 있던 모티프이기도 했고.

-이 영화는 실제와 허구를 오가는 판타지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관객을 위한 최소한의 룰은 있더라. 그런데 즉흥적으로 찍었다니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프리프로덕션 기간이 짧았던 대신 후반작업이 굉장히 길어졌다. 촬영을 진행시키는 동시에 캐릭터와 대사를 만들어나가다 보니 나중에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 굉장히 많았다. 찍어놓은 소스와 원래 갖고 있었던 생각을 토대로 영화를 편집으로 만들어낸 거지. 모자란 부분이나 설명이 더 필요한 부분들은 추가 촬영도 했고.

-그럼 여러 가지 버전이 나왔겠다.

그렇다. 작년 말에 완성한 영화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로드무비 버전이었다.

-따라가기 어렵긴 했지만 다행히 불친절한 영화는 아니었다.(웃음)

초반에 아주 기본적인 모티프만 정해놓고 계속 활용을 하는 식이었는데, 촬영 중간에 배우들과 촬영감독, 미술감독한테서 아이디어가 많이 나왔다. 진정한 의미의 공동 작업이 된 거다.

-이런 방식의 작업은 처음인가?

이렇게 본격적으로 시도한 건 처음이다. 작년에 배우가 아닌 조원선과 작업을 했던 게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배우가 아닌 뮤지션 이우성을 캐스팅한 거다. 이런 작업에는 장단점이 분명히 있는데 장점은 조금 더 활용했고 단점은 좀 더 공부한 것 같다.

-데뷔작 <거울 속으로>(2003)에서 보여준 방식과는 점차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같다.

사실 <거울 속으로>의 영향이 크다. 그땐 정말 미친 듯이 준비했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와서 한국의 제작 방식이 체계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땐 프리프로덕션이 영화의 100퍼센트가 아닐까란 생각도 했으니까. 하지만 나중에 완성된 영화를 보면서 느낀 건 영화에서 생동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이후 서너 편의 단편을 작업하면서 조금씩 바꿔보려고 했던 거다. <눈부신 하루>(2005)의 ‘보물섬’ 때도 준비를 많이 했었는데 그냥 한 번 시도해 본 신들이 나중에 너무 마음에 들었다. 즉흥성이 영화의 훌륭한 요소일 수도 있겠구나 싶어서 차츰 그 부분들을 확장시켜 나갔다. 그러다가 ‘페니 러버’에서 좀 더 오픈했고 <그녀에게>는 완전히 오픈한 건데 사실 두려움도 컸다. 촬영한 지 1주일 됐을 때 ‘아~ 이 영화 완전히 망했구나’란 생각이 들어서 눈앞이 정말 캄캄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보니 굉장히 좋은 시도였고 유익한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근래에 저예산 프로젝트와 유독 인연이 깊었는데, 상업 영화 계획은 없나?

지금 시나리오를 하나 쓰고 있다. 음악 영화인데 코미디가 될 것 같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의 드라마가 될 거다.

-데뷔작이 꽤 호평을 받았는데 호러 영화는 다시 안 할 건가?

사실 2년 전에 영화진흥위원회에서 4억 원 정도 지원금을 받은 좀비 영화가 있다. 한국적인 가족 좀비 영화다. 올해 안에 찍어야 하는 건데 아쉽게도 제작사 사정상 진행을 못하고 있다.


2010-05-17   김현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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