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05.11 동아일보: [프리뷰] 김성호 감독의 그녀에게 ”
[프리뷰]그녀와 스친 옷깃, 현실인가 상상인가… 김성호 감독의 ‘그녀에게’
시나리오-실재인물 오가며
두개의 이야기 하나로 묶어
감독의 개인경험 엮은 영화
현장감 살리려 즉흥연기도
13일 개봉하는 김성호 감독의 ‘그녀에게’는 ‘작지만 시각적으로 즐거운’ 영화다. 이 영화는 부산의 구석진 골목길, 평범한 산길, 컨테이너가 쌓인 공터 등 일상을 카메라에 담았다. 1억 원의 적은 예산을 들였지만 몽환적인 화면이 관객들의 시선을 잡는다.
이 영화에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이야기가 교차한다. 영화감독 인수(이우성)는 여배우 캐스팅을 위해 부산에 내려온다. 그가 섭외한 여배우는 시나리오를 수정해 달라고 요구한다. 잘 풀리지 않던 시나리오 때문에 고민하던 인수는 죽은 남자 친구의 추억을 지우고 싶어 하는 혜련(한주영)을 만나고 그녀에게 영감을 받아 시나리오를 다시 써 내려간다. 두 번째 이야기는 오래전 가족을 떠난 사진작가 동연(조성하)이 딸 혜련을 만나기 위해 부산 곳곳을 뒤지는 데서 시작한다. 동연은 혜련의 집을 찾아가지만 외면당한다. 혜련은 동연을 남겨두고 집을 떠난다.
감독은 이 두 이야기를 복잡하게 교직시키며 영화를 만들어간다. 인수의 시나리오 속에 동연의 이야기를 삽입하고 그 이야기를 다시 실재하는 혜련과 연결시키며 현실과 시나리오를 오간다. 이를 통해 감독이 제기하는 문제는 보이는 것에 대한 의문. 보이는 것이 결국 다 거짓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영화는 이야기보다 이미지에 집중한다. 영화 중간에 등장하는 회상 장면에는 거친 느낌을 주는 흑백 화면을 삽입했다. 흑백 화면 중 일부는 감독과 배우들이 이 영화를 만들기 전 개인적으로 찍어놓은 화면을 활용하기도 했다. 흑백 장면 중에는 인수의 아내가 그네를 타는 모습이 나온다. 이 장면은 인수 역을 맡은 배우 이우성이 자신의 아내가 그네 타는 장면을
찍어 놓은 것을 그대로 영화에 사용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현실’은 영화라는 매체와 결합되면서 완전히 다른 새로운 의미를 띤다. 김 감독은 “‘그녀에게’를 통해 영화라는 매체 자체가 현실과 허구가 결합되어 만들어지고 그것이 완전히 다른 새로운 의미를 지니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번 영화에서 김 감독은 대략적인 줄거리만 만들어 놓고 촬영에 들어갔다. 2주간의 짧은 촬영 기간이었지만 현장에서 얻을 수 있는 즉흥성을 살리는 데 중점을 뒀다. 이를 통해 배우들은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었다. 극중에서 인수는 이름을 묻는 질문에 몇 초간 대답을 못한다. 김 감독은 “배우가 실제로 그 질문을 받는 순간 자신의 이름이 인수인지 우성인지 헷갈릴 정도로 배역에 몰입했다”며 “배우들이 현장에서 대사를 만들기도 하고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으면 시도했다”고 말했다.
‘그녀에게’는 이미지나 영상에 익숙한 젊은 관객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영화다. 개봉관은 서울 광화문 스폰지와 부산 대연동 국도&가람예술관 등 두 곳뿐이다. 나이가 들었다고 생각하는 관객이라면 상상과 현실을 오가는 감독의 연출과 개봉관까지 찾아오는 길이 멀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한편 ‘그녀에게’는 문화체육관광부의 관광진흥개발기금으로 기획한 ‘영화, 한국을 만나다’ 프로젝트 중 부산을 배경으로 한 영화다. 이 프로젝트는 서울, 인천, 강원 춘천, 부산, 제주도를 배경으로 다섯 명의 감독이 각각 다른 도시를 담아내는 작업이다.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김성호 감독-故 조은령 감독
짧았던 인연 영화속에 재현
‘그녀에게’의 기본설정은 김성호 감독(사진)과 고 조은령 감독의 인연에서 비롯됐다. 2002년 여름 도쿄행 비행기 안에서 김 감독은 조 감독을 우연히 만났다. 김 감독은 단편 ‘스케이트’로 1998년 한국 최초로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되었던 조 감독을 먼저 알아보고 인사를 건넸다. 조 감독은 당시 일본의 총련계 조선학교를 배경으로 한 ‘우리 학교’를 촬영하고 있었다. 김 감독은 조 감독이 숙소를 정하지 못했다는 말에 흔쾌히 짐가방을 맡아주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두 사람은 신주쿠의 한 찻집에서 영화에 대한 이야기로 여름밤을 지새웠다.
김 감독이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 두 사람은 좀처럼 만날 기회가 없었다. 서울 명동에서 한번 만났지만 길게 이야기는 나누지 못했다. 김 감독은 2003년 4월 한창 ‘거울 속으로’를 촬영하던 중 조 감독이 자택에서 뇌진탕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김 감독과 조 감독의 만남은 그렇게 김 감독 혼자만의 기억으로 남겨졌다. 아무도 두 사람이 알던 사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김 감독은 시간이 지날수록 2002년 도쿄와 서울에서 만났던 조 감독이 자신만의 상상 속 인물로 여겨졌다.
일주일 동안 혜련과 함께했지만 그녀가 실제로 존재했는지조차 알 수 없는 ‘그녀에게’의 인수는 그래서 세상에 나오게 됐다. 어떤 관계냐는 물음에 “우연히 알게 된 사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는 인수는 김 감독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시나리오-실재인물 오가며
두개의 이야기 하나로 묶어
감독의 개인경험 엮은 영화
현장감 살리려 즉흥연기도
![]() 여배우를 캐스팅하기 위해 부산에 내려왔다가 우연히 혜련을 만나게 된 영화감독 인수(왼쪽). 어렸을 적 헤어진 딸 혜련을 찾아 헤매는 동연(오른쪽). 영화 ‘그녀에게’는 세 사람의 관계를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넘나들며 보여준다. 사진 제공 스폰지 |
이 영화에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이야기가 교차한다. 영화감독 인수(이우성)는 여배우 캐스팅을 위해 부산에 내려온다. 그가 섭외한 여배우는 시나리오를 수정해 달라고 요구한다. 잘 풀리지 않던 시나리오 때문에 고민하던 인수는 죽은 남자 친구의 추억을 지우고 싶어 하는 혜련(한주영)을 만나고 그녀에게 영감을 받아 시나리오를 다시 써 내려간다. 두 번째 이야기는 오래전 가족을 떠난 사진작가 동연(조성하)이 딸 혜련을 만나기 위해 부산 곳곳을 뒤지는 데서 시작한다. 동연은 혜련의 집을 찾아가지만 외면당한다. 혜련은 동연을 남겨두고 집을 떠난다.
감독은 이 두 이야기를 복잡하게 교직시키며 영화를 만들어간다. 인수의 시나리오 속에 동연의 이야기를 삽입하고 그 이야기를 다시 실재하는 혜련과 연결시키며 현실과 시나리오를 오간다. 이를 통해 감독이 제기하는 문제는 보이는 것에 대한 의문. 보이는 것이 결국 다 거짓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영화는 이야기보다 이미지에 집중한다. 영화 중간에 등장하는 회상 장면에는 거친 느낌을 주는 흑백 화면을 삽입했다. 흑백 화면 중 일부는 감독과 배우들이 이 영화를 만들기 전 개인적으로 찍어놓은 화면을 활용하기도 했다. 흑백 장면 중에는 인수의 아내가 그네를 타는 모습이 나온다. 이 장면은 인수 역을 맡은 배우 이우성이 자신의 아내가 그네 타는 장면을
찍어 놓은 것을 그대로 영화에 사용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현실’은 영화라는 매체와 결합되면서 완전히 다른 새로운 의미를 띤다. 김 감독은 “‘그녀에게’를 통해 영화라는 매체 자체가 현실과 허구가 결합되어 만들어지고 그것이 완전히 다른 새로운 의미를 지니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번 영화에서 김 감독은 대략적인 줄거리만 만들어 놓고 촬영에 들어갔다. 2주간의 짧은 촬영 기간이었지만 현장에서 얻을 수 있는 즉흥성을 살리는 데 중점을 뒀다. 이를 통해 배우들은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었다. 극중에서 인수는 이름을 묻는 질문에 몇 초간 대답을 못한다. 김 감독은 “배우가 실제로 그 질문을 받는 순간 자신의 이름이 인수인지 우성인지 헷갈릴 정도로 배역에 몰입했다”며 “배우들이 현장에서 대사를 만들기도 하고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으면 시도했다”고 말했다.
‘그녀에게’는 이미지나 영상에 익숙한 젊은 관객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영화다. 개봉관은 서울 광화문 스폰지와 부산 대연동 국도&가람예술관 등 두 곳뿐이다. 나이가 들었다고 생각하는 관객이라면 상상과 현실을 오가는 감독의 연출과 개봉관까지 찾아오는 길이 멀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한편 ‘그녀에게’는 문화체육관광부의 관광진흥개발기금으로 기획한 ‘영화, 한국을 만나다’ 프로젝트 중 부산을 배경으로 한 영화다. 이 프로젝트는 서울, 인천, 강원 춘천, 부산, 제주도를 배경으로 다섯 명의 감독이 각각 다른 도시를 담아내는 작업이다.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김성호 감독-故 조은령 감독
짧았던 인연 영화속에 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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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감독이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 두 사람은 좀처럼 만날 기회가 없었다. 서울 명동에서 한번 만났지만 길게 이야기는 나누지 못했다. 김 감독은 2003년 4월 한창 ‘거울 속으로’를 촬영하던 중 조 감독이 자택에서 뇌진탕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김 감독과 조 감독의 만남은 그렇게 김 감독 혼자만의 기억으로 남겨졌다. 아무도 두 사람이 알던 사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김 감독은 시간이 지날수록 2002년 도쿄와 서울에서 만났던 조 감독이 자신만의 상상 속 인물로 여겨졌다.
일주일 동안 혜련과 함께했지만 그녀가 실제로 존재했는지조차 알 수 없는 ‘그녀에게’의 인수는 그래서 세상에 나오게 됐다. 어떤 관계냐는 물음에 “우연히 알게 된 사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는 인수는 김 감독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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