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ews: [무비게이션] ‘개훔방’, 21세기 탈무드의 가르침 같은 ‘우화’ ”

국내 애견 인구 1000만 시대를 맞이한 이 시점에 사실 이 영화의 등장은 넌센스적 인 해석으로 보자면 역설적이다. 개봉 예정인 모든 영화들이 1000만을 꿈꾸며 닻을 올리는 시점에서 이 영화는 반대로 1000만 인구에게 악몽을 선사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물론 제목만 보면 그렇다. 동반자 혹은 가족과도 같은 자신의 ‘견’을 완벽하게 훔치는 방법을 선사한다니 말이다. 이건 악몽 그 자체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면 악몽이 아닌 기분 좋은 때 이른 ‘춘몽’(春夢)과도 같다. 개를 훔치는 방법이 이렇게 귀엽고 사랑스럽고 잃어버린 동심을 자극한다면 사실 한 번쯤은 나도 피해자를 꿈꿔볼 희한스런 상황을 맞이하게 되니 말이다.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개훔방)이다. 

국내 첫 영미권 베스트셀러스크린에 옮긴 이 영화는 ‘충무로 3대 악재’ 가운데 무려 두 가지나 담고 있다. 충무로에는 전통적으로 동물이 나오는 영화, 어린이가 주인공인 영화, 그리고 스포츠 영화에 대한 제작 기피 관례가 있다. 그 만큼 흥행에서도 힘이 들고, 제작 과정도 다른 상업영화에 비해 품이 많이 들어간다. ‘개훔방’은 무려 ‘개’와 ‘어린이’가 주인공이다. 더욱이 상업영화로선 흥행에서 심리적 마이너스 요소를 갖춘 가족극이다. 연출을 맡은 김성호 감독조차 “어린이가 주인공인 가족영화는 유치하단 편견을 깨고 싶었다”고 말할 정도니 말이다.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개훔방’은 올 연말 극장가 ‘대작 열전 판’을 부셔버릴 최강 복병으로 꼽기에 손색이 없다.  


영화는 철저하게 어린이의 시선으로 움직인다. 초등학생인 지소(이레)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을 꿈꾸는 꼬마 절도단의 리더다. 가게 부도로 아버지가 집을 나간 뒤 엄마 그리고 동생과 함께 고물 피자 배달차에서 살고 있다. 조만간 생일잔치에 학급 친구들을 초대해야만 한다. 그런데 집이 없다. 동네 부동산에서 집을 사기 위해 전단지를 확인한다. ‘평당 500만원’이란다. 지소의 눈에 ‘평당’은 자신의 꿈인 집이고 ‘500만원’은 그 꿈을 실현시킬 구체적인 기준이다. 이제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지소는 학급친구 채랑(이지원), 친동생 지석(홍은택)과 함께 ‘미션 임파서블’ 팀을 조직한다.  

‘개훔방’은 지소와 채랑 그리고 지석의 눈높이에서 모든 상황과 과정이 해석되는 동화적인 구성력이 돋보인다. 부동산 매물 전단 ‘평당 500만원’을 두고 ‘평당이 어딜까’ ‘아마도 분당 옆 동네일 것’이라는 말과 함께 학급 친구와 집 가격 논쟁을 벌이며 ‘100만원’ ‘200만원’을 운운하는 과정을 보고 있으면, 어린이의 눈으로 본 현실 속 무주택 문제에 대한 우화적 접근법의 정답을 보는 듯 기분 좋은 웃음과 함께 어른으로서의 뜨끔함도 함께 느끼게 된다.


영 화 속 핵심인 개를 훔치는 방법에 대한 완벽한 계획은 더욱 우스꽝스럽다. 아니 유치하다. 분명 이건 어른들의 시선이다. 하지만 행동은 어린이들의 몫이다. 이들은 자신의 눈높이에서 모든 것을 보고 실천에 옮긴다. 사실 이 행위 자체가 어른이라면 ‘절도’란 범죄가 성립된다. 하지만 이들 세 명의 꼬마들에겐 ‘잠시 빌렸다가 주는’ 착한 행동의 정당성을 가진다. 지소와 채랑 그리고 지석은 그 ‘착함’이란 단어에 맞장구를 치고 놀이처럼 자신들의 행동을 실행에 옮긴다.

직접 작성한 범죄 실행서는 동화책처럼 아기자기하다. 이들이 범행(?)을 실천에 옮기는 모습은 놀이동산에서의 술래잡기와 같다. 이제 개를 훔쳤다. 그 개를 훔치면서 ‘개훔방’은 진짜 말하고픈 애기로 고개를 서서히 돌리게 된다.  


의 문의 노숙자(최민수)를 통해 지소는 자신의 진짜 원하는 게 집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집이 없기에 그리고 아빠가 없단 현실을 피하기 위해 엄마(강혜정)에게 모진 말을 쏟아낸 지소이지만 사실 속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그 속마음을 이상스럽게도 처음 대면에선 비명을 지르고 도망치고 만 흉측한 외모의 세 손가락 노숙자 아저씨에게 털어놓다니. 감독은 자유로운 사고방식의 확장이 어린이의 시선 속에서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착한 접근법으로 다가갔다. 또한 이를 잡아주는 길라잡이가 ‘노숙자’라니 감독의 선택 자체를 ‘신의 한 수’라고 표현해야 할지 아니면 현실의 잔인함을 어린이의 시선에서 접근한 것인지는 오롯이 관객의 몫으로 전하는 듯하다. 

개를 잃어버린 노부인(김혜자)의 사연도 눈길을 끈다. 괴팍하고 심술쟁이 할머니이지만 개 월리에게만큼은 모든 정을 쏟아 붓는 이 할머니의 가슴 따뜻해지는 사연은 ‘개훔방’의 모든 굴레를 하나로 엮어주는 일종의 사건 해결 열쇠가 된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온 뒤 노부인의 눈빛이 변하는 지점에서 지소와 이 노부인은 결국 한 곳을 바라보며 서로를 이해하는 친구 이상의 감정을 나눈다. 


가 족극의 가벼움과 어린이와 개가 주인공인 영화의 황당함이 영화 전반을 이끌어 가는 주된 동력임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잔인한 현실(침체된 경제, 하우스푸어, 렌트푸어)의 이면은 사실 바라보는 관점에서 다가오고 느껴지는 체감의 법칙이 달라질 수 있다는 교훈을 주는 것 같다. 비하인드 스토리 하나. 출연 배우 중 최민수가 시나리오를 전해 받은 뒤 김성호 감독에게 건낸 “어른들을 위한 완벽한 동화다”고 평한 이유를 영화를 본 두 분명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올 겨울 극장가는 유난히 가족 코드의 스토리 영화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그 가운데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정말 완벽하게 다른 지점에서 출발한다. 우화란 보는 관점 혹은 이해하는 지점에 따라 다르게 다가온다. 이 영화가 바로 그런 느낌을 전해 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느낌은 한국영화를 통틀어 단 한 번도 관객들이 느껴보지 못한 지점일 것이다.


올 겨울 절대 놓칠 수도, 놓쳐서도 안되는 영화가 바로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이다. 개봉은 오는 31일.  

P.S 영화 ‘소원’의 주인공이던 ‘지소’역의 아역배우 이레가 선보이는 연기는 이미 정평이 나 있다. 하지만 ‘채랑’역의 이지원, ‘지소’의 동생 ‘지석’ 역의 홍은택이 선보이는 연기를 보고 있으면 행복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들 세 어린이의 연기를 위해 관람 시간이 정해져 있다는 게 야속할 정도다. 

김재범 기자 cine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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